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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륜은 인간과 기계인 자전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레저스포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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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덴마크 오드랍에서 선보인 경륜

공기타이어의 발명으로 자전거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자전거를 매개로 한 경기가 곳곳에서 열렸다. 그러나 여태까지는 참가 선수들 간의 순위다툼이나 기록경쟁에 따른 시상이 주를 이루었다. 경기에 참여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단지 구경만 하는 방관자적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구경꾼들은 단순히 보는 재미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전거 경기에 출전한 선수 중 어떤 선수가 우승할 것인지를 점치며 금전을 걸고 고객들끼리 내기를 하고 싶은 인간 본성이 작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간 내기심리의 본성과 자전거 경주를 최초로 결합시킨 나라는 덴마크다. 덴마크는 1888년 수도 코펜하겐 근교의 오드랍(Odrap) 경기장을 건설하면서 경륜을 최초로 선보였던 것이다. 오드랍 경기장은 경주로의 길이가 370m, 폭 8m, 관람석 14,000석으로 피스트(Piste-경주로) 재질은 시멘트였다.

당시 경주는 부정기적으로 열렸으며 개최시간은 주로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야간경기로 진행됐다. 승식은 단승식과 연승식 2종류였으며 선수들은 아마추어와 프로 구분이 없었다. 고객들은 맥주와 와인을 마시면서 경주를 즐겼다.

이렇게‘경주’에‘내기’가 가미됨으로써 선수와 고객은 서로 교감하면서 재미는 배가되고 내기에서 이기게 되면 그에 따른 보상에 즐거움과 쾌감은 증폭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드랍 경기장에서의 경륜은 단순한 경주 관람을 넘어 고객도 경주에 참여하면서 경주결과에 따라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최초의 발상이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일본
경륜을 꽃피운 나라 일본

덴마크에서 선보인 경륜은 이후 일본에서 게이린(Keirin-競輪)이란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경륜이 꽃피게 되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후 전국민 사이에 팽배해 있던 패배감을 불식시키고, 패전으로부터 국가를 재건하고, 폐허가 된 지방도시들을 복구하며, 사회기반시설 등을 정비하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는 정책이 필요했다. 이러한 시기에 자전거업계의 관계자들로 구성된 자전거경기법 기성동맹(期成同盟)이 결성되어 옛날부터 실시돼 왔던 자전거 시합에 경마의 원리를 응용하여 경륜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추진하게 됐다.

말을 자전거에, 기수를 선수에, 경마장 경주로를 경륜장 경주로로 대체해 자전거 선수들을 빙글빙글 돌리는 방법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경사가 있는 경주로라면 자전거의 고속질주가 가능하고 선두선수의 바람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선두유도원이라는 바람막이를 두면 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바퀴 반 전에 종을 울려서 각자의 전법으로 마지막 스퍼트를 하도록 해 순위를 가리는 경주를 고안해 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48년 11월 20일 키타큐우슈우(北九州)의 고쿠라(小倉)경륜장에서 일본 최초로 경주방법과 규칙 등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경륜이 시행되었다. 개장과 함께 4일동안 시행된 경주에서 연일 2만 여명의 관객이 운집함으로써 성공적인 출발을 하게 됨으로써 현대적 의미의 경륜이 탄생하게 됐다.

이렇게 탄생한 경륜은 고객들이 경마처럼 경주권을 구입해 승를를 적중시키면 배당금을 받고 일정금액은 패전에 따른 국가 재건에 사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륜은 패전으로 패배감에 젖어있던 일본 국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자신감을 심어주는데도 일조를 했던 것이다.

경륜은 또한 경주로가 커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마보다는 가시거리 내에서 박진감 있게 진행되는 장점이 있어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방도시들이 복구 재원 확보를 위해 앞 다투어 경륜사업에 참여함으로써 불과 3년만에 경륜장은 63개로 늘어났다. 현재는 고쿠라, 마애바시 등 2개의 돔형 경륜장을 비롯해 모두 47개의 경륜장이 있다.